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니발 바르카 (문단 편집) ==== 종합 ==== 한니발이 비범한 것은 그의 전략 자체가 참신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성공시킨 그의 지도력 때문이다. 한니발은 막대한 병력손실을 감수하고 기어코 이탈리아에 침투해내서 이탈리아에 전선을 형성하는데 성공한다. 당장 한니발의 동생 하스드루발을 보면, 형보다 유리한 조건이었음에도 알프스를 건넌 후 로마군을 돌파하기는 커녕 [[메타우루스 전투|도리어 요격당해 목숨을 잃은 바 있다]]. 게다가 한니발은 5만에 달하는 대군을 이끌고 보급도 없이 험난한 원정을 해야 했다. 이런 악조건에서 전력을 잘 추스르며 원정에 성공한 것만 해도 역사적으로 대단히 드문 사례이다. 더욱이 한니발은 그런 원정을 하고도 이탈리아에서 무려 16년을 버티며 적진을 초토화시켰다. 물론, 카르타고와 로마의 국력 차이 때문에 한니발의 전략은 종국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계획을 실현시키고 로마를 위기로 몰아넣은 전과는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하여 그는 리비우스의 표현을 빌리면 '''출신도 제각각인 오합지졸의 군대'''를 자신의 리더십으로 통제해왔다. 처음에는 돈과 전리품을 위해 싸웠던 병사들이었지만, 이들은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위해 전원 목숨까지 바쳤다.[* 마크 힐리, 2007, 33쪽.] 이 또한 한니발의 카리스마가 어떠했는지 말해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조차 장기간 원정으로 인해 [[히파시스 반란|병사들과 휘하 장군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걸 막지 못 했다]]. 군의 상당수가 자신과 같은 마케도니아인과 그리스인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므로 한니발의 장군으로서의 역량이 상당했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는 그의 적이었던 로마인들도 한니발을 두려워할지언정 그의 능력에는 경의를 표했다. 로마인들이 한니발을 높이 평가했음은 수많은 기록에 드러난다. 심지어 대부분의 로마인들은 자국의 장군인 스키피오보다도 한니발을 높이 평가했다. 스키피오는 로마를 대표하는 장군이었던 데다 한니발을 회전으로 이긴 전적이 있는데도 이런 평가를 내린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스키피오가 한니발보다 무조건 뒤떨어진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스키피오가 최후의 결전에서 한니발을 이겼다고 그가 한니발보다 우수하다고 무작정 보는 것도 옳지 않다. [[자마 전투]]에서 카르타고군은 연이은 패배로 인해 수백 년간 소집된 적이 없던 시민병까지 동원하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고, 강력하다고 평가받는 코끼리 부대는 코끼리의 훈련도 미달로 인해 제대로 기동이 불가능했다. 사실상 한니발이 신뢰할 수 있는 병력이라고는 그를 따라 이탈리아에서 철수해온 일부 보병이 전부였다. 한편 스키피오의 로마군은 숫자는 적어도 견실하게 준비를 해온 상태였다. 즉, 한니발과 스키피오 중 누가 더 낫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으며, 자마 전투에서의 승패는 지휘관의 실력이 아니라 군대의 훈련 정도에 따라 갈렸던 것. 한니발에 대한 로마의 감정은 증오와 경의가 얽혀있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반도를 떠나면서 헤라 신전의 제단 벽에 자신의 전과를 새겨놓고 갔다. 즉, 로마를 코너로 몰아붙인 전적들을 로마인들 보라고 써놓은 것이다. 그러나 50년이 지난 후 폴리비우스가 역사서를 쓰면서 그 기록을 참고했다. 다시 말해, 로마인들은 그들의 적이 자신들 영토에 남겨둔 승전비를 그대로 보관해 놨다는 소리. 심지어 후대에 가면 한니발의 이름을 딴 '한니발리아누스'라는 이름을 '''왕족에게 붙여줄 정도'''가 된다.[* 참고로 한니발리우스는 여러 명이 있는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복형제]] 중 한 명의 이름이기도 하고, 또 다른 이복형제인 플라비우스 달마티우스 ^^(333년 [[감찰관]])^^의 아들, 즉 조카 [[한니발리아누스]]의 이름이기도 했다. - 에이드리언 골즈워디,《로마 멸망사 (루비박스, 2012)》, 249쪽 및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ntinian_dynasty#Family_tree|영문위키]] 참고.] 한니발 때문에 생긴 [[라틴어]] 속담으로 "한니발이 바로 문 앞에 있다.(Hannibal ad portas)"라는 말이 있다. 적이 바로 코앞에 와 있다는 말이며, 영화 제목인 [[에너미 앳 더 게이트]](The enemy at the gate)도 여기서 따온 말이다. 로마 여인들은 이 말로 우는 아이들을 달랬다고 하며, 이는 로마가 멸망할 때까지 지속된다. 전쟁사 연구자로 유명한 역사학자 [[임용한]] KJ인문경영연구원[* 구(舊)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이 한니발의 전략을 [[비지니스]] 측면에서 분석한 글도 있다. [[http://blog.naver.com/businessinsight/221065379727|2017년 8월 2일 네이버 블로그 비지니스인사이트 양파껍질 벗기듯 로마 학살, 명장 한니발의 천재적 전략]]. 스키피오와 한니발이 [[셀레우코스]]의 한 집회에서 만나 나눈 대화가 유명하다. 당시 한니발은 셀레우코스에 망명해서 군사 고문관을 맡고 있었고 스키피오는 [[외교]]적인 일로 방문했는데, 과거의 [[라이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동병상련]]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다. 한니발과 스키피오 모두 자기 조국을 위해 싸워왔던 인물이지만 당시 한니발은 카르타고에서 쫓겨나 망명을 떠나는 신세로 전락했고, 스키피오는 나라에서 쫓겨나진 않았어도 로마 정계에서 심각한 견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는 알 수 없으며, 후대의 윤색이라는 견해도 있다. >스키피오: 가장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알렉산드로스]]이지요. 적은 병력을 가지고 대군을 무찔렀고 인간이 일찍이 가보지 못한 세상의 끝까지 갔기 때문이오. >스키피오: 두 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 [[피로스]]요. 진영을 잘 짜는 방법을 처음 생각해냈지. 지형에 따라 군대를 잘 활용하기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소. 사람들의 지원을 잘 얻어냈고, 그래서 이탈리아를 침공했을 때에도 이탈리아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냈소. 그들이 그 땅에서 잘 살아왔는데도 말이오. >스키피오: 세 번째로 위대한 장군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니발: '''나!''' >스키피오: (웃음을 터트리며) 만약 당신이 자마 전투에서 나를 물리쳤다면 그 땐 뭐라고 말했겠습니까? >한니발: 그랬더라면 '''내가 알렉산드로스, 피로스, 기타 세상의 모든 장군들보다 윗길이라고 말했을 거요.'''[* 이 발언은 기록자 리비우스에 의하면 한니발이 스키피오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한 것이다. 알렉산드로스를 능가할 수 있었던 자신을 이긴 명장이 바로 당신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그가 고대의 명장 반열로 꼽기에는 이견이 없다. 단지 본의는 아니었지만 '너무 잘 싸워서' 카르타고가 멸망하게 된 단초를 제공한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물론 이미 1차 포에니 전쟁이란 선례를 남긴 카르타고가 그 이상의 전쟁을 안 벌여도 무사했을지는 의문이긴 하나, 아예 전투를 안한 코린토스나 적극적으로 로마를 침략했던 에페이로스의 상반된 결말을 보면 딱잘라 단정할 수도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